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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고] 에너지전환의 첫걸음 : 인사이트(Jtbc 박상욱 기자)

[기획원고] 에너지전환의 첫걸음 : 인사이트(Jtbc 박상욱 기자)
지난 칼럼에서 이산화탄소의 대기 잔존기간이 수백년에 이르는 만큼, 온실가스 저감 정책은 실로 ‘이백년지대계(二百年之大計)’라는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긴 호흡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나가려면 정책 설계자의 ‘인사이트’, 통찰력이 절실하고요.

앞서 ‘일관성 없는 정책의 예’로 꼽혔던 클린 디젤 정책의 도입과 폐기를 살펴보면, 인사이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습니다.
 
[기획원고] 에너지전환의 첫걸음 : 인사이트(Jtbc 박상욱 기자)
 

자, 도입 10년만에 막을 내린 클린 디젤 정책. 클린 디젤 정책의 폐기로 그럼 우리 지구의 사정은 좀 좋아졌을까요. 딱히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의 SUV 선호는 달라지지 않았고, 이는 곧 ‘가솔린 SUV’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크고 무거운 SUV에 가솔린 엔진의 조합은 곧 온실가스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미세먼지 뿜어내는 디젤 자동차냐, 온실가스 뿜어내는 가솔린 자동차냐… 사실 우위를 가리기 어려운 두 내연기관 사이에서 클린 디젤 정책의 폐기는 의도와 상관 없는 ‘풍선 효과’를 유발한 셈입니다.

클린 디젤 정책만 정책의 설계 단계에서 아쉬움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이를 폐기하는 정책에서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 정부가 클린 디젤 폐기에 나선 2018년 연말, 이와 더불어 ‘진짜’ 친환경차 확대에 보다 더 드라이브를 걸었다면 어땠을까요. 디젤 자동차를 찾던 수요를 가솔린이 아닌 하이브리드 혹은 전기차로 유도했다면 말입니다.

아쉬움은 수요 측면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2018년 말이면 이미 테슬라가 모델 S에 이어 모델3까지 발표한 이후입니다. 그리고 2019년 8월, 모델3가 한국에 출시하면서 국내 전기차 시장은 그야말로 ‘테슬라 천하’가 되어버렸죠. 만약, 클린 디젤 폐기와 친환경차 확대가 동시에 진행됐다면 공급 측면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을 겁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이 한 박자 빠르게 친환경차 개발에 박차를 가했을 테니까요.

현재 에너지 전환 정책 역시, 인사이트가 절실한 중대 기로에 서있습니다. 정부의 탄소중립 선언과 함께 각종 정책 제안이 쏟아지고 있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달 초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3+1 전략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①경제구조 저탄소화, ②저탄소 산업생태계 조성, ③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 전환이라는 ‘3대 정책 방향’에 ‘탄소중립 제도기반 강화’를 더한 전략입니다.

이런 가운데 재생에너지의 확대, 탈석탄, 탈원전 그리고 전기요금 조정에 전력시장 개방까지 정말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 번 뿜어진 이산화탄소가 대기중 남아있는 수백년을 좌지우지하는, 국가의 에너지 안보를 좌지우지하는 에너지 전환인 만큼 여러 발전적 논의를 거쳐 ‘최선’이 정책으로 시행되어야겠죠.

위에 꼽은 주요 키워드 가운데 두 가지, 탈석탄과 탈원전을 살펴보겠습니다.

‘탈○○’이라는 표현에 대해 ‘급진’, ‘과격’이라는 인식을 갖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합니다. 탈석탄, 탈원전에 대해선 언제나 “당장 발전소 멈춰봐라. 전기 수요를 맞출 수 있는줄 아느냐”라는 반응이 쏟아지죠. 사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해외의 탈석탄, 탈원전 계획을 살펴보면, 원문에선 이런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페이즈 아웃(Phase out)입니다. 석탄화력발전이든, 원자력발전이든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면서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단계적 중단’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체 발전 비중 가운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석탄화력발전을 줄이는 일엔 어떤 일들이 필요할까요. 그저 발전소 문만 닫으면 끝날 일일까요. 그럼 그 많은 발전사들은? 거기에 소속된 노동자들은? 이와 관련된 여러 중소기업들과 그 식구들은? 이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탈석탄’만 외친다면, 이는 말 그대로 급진적이고 과격한 한낱 ‘주장’에 불과할 겁니다.

그렇다면 탈석탄 정책에 필요한, 석탄화력발전소의 페이즈 아웃에 필요한 인사이트는 무엇일까요. 관련 기업들이 ‘전환’에 나설 수 있도록 각종 지원 계획이나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겁니다. 또, 노동자 개개인에겐 합당한 보상 또는 직업 전환 지원 등이 이뤄져야겠죠.
 
 
 
 

 
 
[기획원고] 에너지전환의 첫걸음 : 인사이트(Jtbc 박상욱 기자)
BP는 석유를 넘어서, 2050 넷제로도 선언했습니다. 출처: BP 홈페이지
 
 
 


물론, 정부의 이러한 지원에만 기대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영국의 BP(British Petroleum) 같은 경우, 사명(社名) 자체가 ‘영국 석유’인 이 회사의 경우 ‘석유시대의 종말’을 앞두고 새로운 슬로건을 내놨습니다. ‘Beyond Petroleum(석유를 넘어서)’으로 말이죠. 사업자 자체적으로도 과감한 전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탈원전의 경우는 어떨까요. 가동 중인 발전소를 갑자기, 당장 내일부터 셧 다운 한다? 원전의 경우 전자제품처럼 전원을 껐다 켰다 하듯이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늘 당장 원전 오프(Off)!”는 기술적 측면에서도, 에너지 수급의 측면에서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도, 찬성하는 사람도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 원전의 시대, 적어도 현존 원전 방식의 시대의 끝이 조금씩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EU는 ‘지속가능금융’ 지원 대상에서 원자력발전을 빼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향후 10년간 최소 1조 유로가 투자될 EU의 그린딜 투자계획에서도 원전은 빠지게 됐습니다. 물론, 유럽에서도 이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오갔고, 숙고 끝에 이런 결정이 내려졌죠.
 
 
 
 
 
[기획원고] 에너지전환의 첫걸음 : 인사이트(Jtbc 박상욱 기자)
유럽연합의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요건(EU Technical Expert Group on Sustainable Finance, 2020)
 
 
 


그러한 결정의 배경은 바로 이렇습니다. 6개의 환경 목표와 4개의 준수 요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분류됩니다.

환경 목표는 ①기후변화 완화, ②기후변화 적응, ③지속가능한 수자원 이용 및 보호, ④순환경제로의 전환, ⑤오염방지 및 통제, ⑥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보호 및 복원 이렇게 6개입니다. 준수 요건은 ①6가지 환경 목표 중 하나 이상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 ②다른 환경 목표에 중대한 피해는 없을 것, ③탄탄한 과학 기반의 기술 선별조건에 부합하는 활동일 것, ④최소한의 사회 및 거버넌스 안전에 부합하는 활동일 것 총 네 가지고요.

이중 원자력발전은 두 번째 준수 요건, <다른 환경 목표에 ’중대한 피해(Do no significant harm)‘는 없을 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EU가 내린 결론입니다. 원전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의 감축에 기여하는 부분은 인정되나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보기엔 어렵다는 겁니다.
[기획원고] 에너지전환의 첫걸음 : 인사이트(Jtbc 박상욱 기자)
그렇다면 탈원전 정책에 필요한, 원전의 페이즈 아웃에 필요한 인사이트는 무엇일까요. 원전을 폐기한다는 것이 관련 기술의 폐기나 전문 인력에 대한 반감을 의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원자력 기술은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하고 발전시켜야 함이 분명하니까요.

원자력발전을 멈춘다 하더라도 남아있는 일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사용후핵연료도, 고준위나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등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죠. 원전을 해체하는 것 또한 보통 일이 아닙니다. 관련 기술의 지속적인 발달이나 전문 인력의 지속적인 육성 없인 불가능합니다.

관련 인력과 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곧 ‘포스트 원전’ 시대에서의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운영 중인 원전 약 450기 가운데 305기가 30년 넘은 노후 원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U를 시작으로 곳곳에선 원전의 페이즈 아웃이 진행 중이고요.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의 규모는 549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런 가운데 실제 원전을 해체한 경험이 있는 나라는 미국과 독일, 일본 3개 나라뿐이죠.

지구에서 가장 원전이 밀집된 나라, 우리나라로서는 원전을 안전하게 해체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은 원전을 해외에 해체를 의뢰하는 것보다 직접 해체한다면, 더 나아가 해외에 우리가 지은 원전을 (혹은 그렇지 않은 원전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해체한다면 이는 또 다른 시장 개척이 될 수 있습니다. 원전 건설을 수주하는 나라에서 이젠 원전 해체도 도맡는 나라로 발돋움 하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전환에 있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인사이트는 정책의 정쟁(政爭)화를 막아야 한다는 겁니다. 에너지 전환 정책이, 나아가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정치 이슈로 떠오르게 된다면, ‘이백년지대계’는 결국 5년마다 바뀌는 단기 계획에 머물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글, 박상욱 JT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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