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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고] ‘수소경제’ 2년,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수소경제’ 2년,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 글 : 맹미선 칼럼니스트

수소를 활용한 연료전지, 곧 수소 연료전지는 1960년 처음 개발된 이래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를 활용한 기존 발전 시스템이 건재한 상황에서 굳이 수소 연료전지의 장단점을 꼼꼼히 뜯어 살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각종 사회·환경 문제가 대두되면서 수소 연료전지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함께 주요 차세대 미래 에너지로 이목을 끌게 됐습니다.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현장 © 청와대

우리나라는 2019년 1월 ‘수소경제’를 핵심 키워드로 하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발표한 이래 전국적인 수소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각종 제도 및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해 온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다소 늦게 첫발을 뗀 셈입니다. 하지만 관련법 제정 속도 및 전문위원회 구성, 연구개발(R&D)과 인프라 구축 투입 예산 등을 비추어 보면, 수소경제 정책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힘있게 추진되는 에너지·경제 정책 중 하나로 보입니다. 코로나19로 전국이 마비된 지난 2020년, 수소경제와 관련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왜 수소일까?

건전지 안에 저장된 특수한 화학물질도 아니고, 발전소라는 거대 전력 시설을 거치지도 않는 평범한 수소가 어떻게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쓰인다는 것일까요? 수소는 지구에서 세 번째로 많은 원소라고 하던데, 석유·석탄과 달리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수소를 잘 포집하면 무한정 전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걸까요?

예상하셨겠지만, 자연 상태 그대로인 수소로는 전기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수소를 연료로 삼아 화학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특수한 장치가 필요합니다. 건전지가 내부에 저장된 화학물질의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화학 전지라면, 수소 연료전지는 수소 기체와 산소 기체, 두 기체의 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촉매를 활용해 전기 에너지를 만듭니다. 기존 생산 공정의 부산물로 형성된 수소(부생수소)를 가공할 때도, 여분의 태양광·풍력 에너지를 수소로 바꿀 때도 그에 적합한 기술과 잘 설계된 장치 및 설비가 우선 갖춰져야 합니다.

만약 수소 연료전지를 탑재한 탈것이 휘발유로 움직이는 차량을 대체할 수 있다면, 만약 각 가정과 도심 속 사무실 건물에 발전용 연료전지가 쓰여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훨씬 덜 쓸 수 있다면 탄소 배출량은 현저히 줄어들겠지요. 수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동시에, 탄소 배출의 주범인 내연기관 탈것을 대신한 차세대 모빌리티를 구동하는 핵심 연료로도 쓰일 수 있어 그 활용범위가 넓습니다.

우리나라는 수소경제 정책을 통해 태양광·풍력 외에 또 하나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지구 환경 문제 해결을 꾀하고 있는데요, 수소 에너지원이 가진 가능성은 해외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 자동차·소재·부품 등 기존 제조업을 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소경제 정책의 바탕이 되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은 ‘수소경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화석연료가 중심인 현재 에너지 시스템을 수소 에너지원을 활용한 시스템으로 바꾸고, 수소를 안정적으로 쓰는 데 필요한 모든 산업과 시장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경제 시스템.”

즉 수소경제는 수소를 생산·저장·운송·활용에 필요한 기술 및 기반 시설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 전국 규모의 시스템·인프라 변화를 요구합니다. 이 때문에 2019년 로드맵이 발표된 이래 1년간 표준화 정책·R&D 정책·안전 관리 정책 등 6개의 굵직한 후속 대책들이 수립됐습니다.


전국 수소 충전소 구축, ‘느리지만 꾸준히’

2019년을 ‘수소경제 원년’이라고 한다면, 2020년은 로드맵의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보다 세부적인 정책이 마련된 한해였습니다. 2020년 1월 「수소경제 육성 및 안전 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이 제정된 후, 반년 뒤 이 법안을 근거로 수소경제 지휘 본부 역할을 할 ‘수소경제 위원회’가 출범했어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이 위원회는 수소경제와 관련된 8개 부처 장관뿐 아니라 현대차동차, 한국가스공사, 한국위험물학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전문가 11명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소경제위원회 1차 회의. 수소에너지 전반을 포괄적으로 논의했습니다. © 산업통상자원부

수소경제 위원회 출범일에 열린 첫 번째 회의에서는 수소차와 수소충전소 추진 성과 및 향후 계획과 함께 수소도시, 수소산업 생태계, 수소기술 등 수소에너지와 관련된 사항을 전반적으로 논의했습니다. 수소 에너지 시스템 전환을 막 이야기하기 시작한 현시점에서는 수소경제가 수소차 생산과 동일시될지 모르겠으나, 수소차 역시 수소경제의 생산물 중 하나입니다. 수소차가 내연기관 탈것을 대신할 만큼 일상화되려면 수소 기술을 개발할 예산과 전문인력이 필요하고, 기존 교통 시스템과 지역 균형 발전을 고려해 충전소 부지를 선정해야 하며, 고도화된 기술과 실제 생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시장을 마련해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꾀해야 합니다. 회의에서 논의된 「수소 도시 추진 현황 및 확산 전략」, 「수소 산업 생태계 경쟁력 강화 방안」, 「수소 기술 로드맵 이행 현황 및 향후 계획」 등은 인력·기술·제도·인프라 전 영역의 장기적 변화를 위한 각 부처의 정책 방향을 보여 주는 문서라 할 수 있습니다.

첫 일 년과 마찬가지로 2020년 역시 수소차 보급, 수소 충전소 설치 현황이 중요한 성과로 부각됐습니다. 2020년 5월 현재 국내에 보급된 수소차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7,331대이며, 수소 버스, 수소 화물차 등 수소 연료전지를 탑재한 공공 차량이 시범 운행 중입니다. 수소 충전소는 2021년 2월 현재 전국 73기 설치돼 있는데요. 한 장소에 여러 기가 설치됐거나 아직 개장하지 않은 곳이 있어 실제 충전이 가능한 곳은 56곳입니다. 일본(134곳), 독일(91곳)보다는 적지만 선발 주자인 미국(69곳) 등과 비교하면 설치 속도가 무척 빠른 편이죠.


전국 수소충전소 구축 계획 © 산업통상자원부

현재 정부는 승용차뿐 아니라 중·장거리 버스, 중·대형 화물차, 지게차 등 다양한 수소차를 생산하고 2030년에는 주요 도시에서 20분 내외, 고속도로에서 반경 75킬로미터 내에 충전이 가능하도록 수소 충전소를 660기 수준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는 충전소 설치가 용이한 공공 부지를 확보하고, 신도시 개발 사업 및 국가산업단지·국도·고속도로 등 사회 기반시설 계획에 충전소 부지를 반영할 방침이라고 해요. 수소차 이용자의 편의를 위한 전용 서비스 센터도 단계적으로 늘려갈 예정입니다.


수소 산업 생태계, 아직 빈 곳 많아... 지자체와 협력 강화

수소경제 계획에서 수소차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는 아직 사람들의 관심도 부족하고, 산업 생태계 조성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기술력 측면에서도 전기 에너지로 쓸 수소를 생산하고, 저장하고, 운송하고, 활용하는 전 과정 중 석유 화학 공정에서 부생 수소를 얻거나 수소 연료전지를 승용차에 활용하는 기술을 제외하면 대부분 기초·원천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어요. 로드맵을 통해 수소경제 전반의 목표가 발표됐음에도 민간 영역에서는 수소 산업 분야를 시작할 유인책이 부족하고, 일부 지자체에서 산발적으로 정책을 시행하는 정도입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의 주도 아래 ‘수소 플러스 1000’ 프로젝트를 신설, 모빌리티·연료전지·충전소·액화·수전해 등 각 기술 항목에 특화된 수소 전문 기업이 육성될 계획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수소 기술 개발 로드맵’과 맞물려 범부처 R&D 예산으로 책정된 지원금이 투입되고, 기타 인력 지원 정책 등이 기획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요. 기존 산업 생태계 육성 정책처럼 국내에서 개발된 기술이 해외 프로젝트로 연결되는 사례도 늘어날 수 있겠고요.


국회(왼쪽)과 창원(오른쪽)에 건설된 수소충전소의 전경 © 산업통상자원부

생산한 수소를 각 지역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세부 계획도 마련됐어요. 현재는 국가에서 지정한 일부 시범 도시에서만 수소 전력을 활용하고 있는데, 수소차 보급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는 가정하에 향후 10년간 지역별 수소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거점 생산 기지를 구상해 본 것이죠. 가령 석유 화학 단지가 많은 울산 근처 지역은 부생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지만 이와 거리가 먼 지역은 수소 공급가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가스공사·민간 주도로 중·소규모 수소 생산 기지를 건립하고, R&D로 개발한 저장·운송 기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머지않은 미래에는 화석연료 에너지 시스템과 비교해 훨씬 적은 자본으로 에너지를 분산 수급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수소경제 실무 추진단은 지역에너지계획, 주민 수용성, 추진 실적 등을 평가지표로 한 ‘수소 역량 지표’를 개발해 수소경제 정책과 지자체 정책의 연계를 꾀하기로 했어요. 인구와 교통량이 많은 수도권에는 수소차·발전용 연료전지의 보급을 늘리고, 현재 시범사업을 추진 중인 지역에서는 생산·저장·운송 등 분야별 특화 사업을 육성하는 데 방점을 둡니다. 대전처럼 연구 단지가 모인 곳에서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고요. 수소경제라는 큰 밑그림과 지역에 맞춤한 에너지 계획이 지속 추진될 수 있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지던 ‘탄소중립’이라는 문구가 한층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출처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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