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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고] 우리가 정말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까

글 : 박기용 한겨레신문 기자

  그림 장미정 모두를 위한 환경교육연구소 대표

 

코로나19로 조금 나아졌나 싶던 미세먼지가 여전하다. 감염병이나 미세먼지 모두 기후위기 문제와 잇닿아 있지만, 이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기후위기는, 중요하긴 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그런 부류에 속한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생각하면 정말 야속한 일이다.

 

필자가 속한 <한겨레>는 지난해 4월 기후위기팀을 신설했다. 한국 언론에선 처음이었다. 팀장을 맡은 나는 팀을 소개하는 칼럼에서 팀의 임무를 '인류 절멸사의 초기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라 썼다. 비관적이나 그저 내 기질이 그런 탓이라고, 일을 하는 동안은 그리 생각했다. 한데 조금 떨어져 보니 역시 인류가 기후위기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점점 확고해진다.

 

난 육아를 위해 휴직을 하고 '동네생활자'로 두 달 남짓 살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한 공동체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다른 곳보다 각종 주민 모임이 활성화돼 있다. 먼저 동네에 적응한 아내는 '대학 캠퍼스에서 사는 듯하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서 최근 '기후위기비상행동특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미 있는 모임들이 공간, 돌봄, 갈등조정 같은 주거공동체에 으레 필요한 조직인지라 기후 문제를 다루는 모임이 좀 의외였다. 아파트에서 대체 뭘 한다는 걸까 싶기도 하고, 동네생활자로서 이웃과 교류할 기회겠기에 참여해 두어 번 회의에 나갔다.

 

회의에서 주로 다뤄진 얘기는 역시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었다. 최종 소비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기여는 자원을 아껴 쓰는 것일 수밖에 없기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관련된 다른 지역 단체들과 연대하면서 시정이나 도정 감시를 하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생활인 모임의 한계가 있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한 주민 모임 정도가 될 가능성이 현재로선 크다.

 

 

이 모임 사람들과 함께 온라인 강의를 들었다. 기후 문제의 단골 강연자인 조천호 박사(전 국립기상과학원장) 강의를 거의 1년 만에 다시 듣게 됐다. 새로운 내용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온실가스를 줄이는데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비교한 그래프(아래)였다. 나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그래프를 보며 곱씹게 됐다.

 

 

Seth Wynes/Kimberly Nicholas,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 2017

이를 보면, 한 사람이 자신이 쓰는 전등을 LED로 교체하거나, 빨래 건조기를 쓰지 않거나, 자원을 재활용하거나, 세탁 때 더운 물을 쓰지 않고, 차를 하이브리드로 교체하고, 채식을 했을 때의 기여도는 이산화탄소환산톤 기준으로 각각 연간 1톤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재생에너지를 쓰고, 비행기를 타지 않고, 차 없이 사는 것 등이 1~2톤가량을 줄이지만, 이 모든 것은 한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58.6)만 못하다. 사람이 먹고 마시고 쓰고 입고 다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문제이니, 결국 사람 자체를 줄이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것이다

스웨덴 룬드대학 지속가능센터의 킴벌리 니콜라스 박사가 작성한 이 그래프는, 엉뚱하게도 결국 저출산이 최고의 기후위기 대응이란 결론에 이른다. 실제로 인류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세기 초 156천만 명이었던 인류는 2년 뒤인 202380억 명에 이르고, 다시 이번 세기 중반쯤 100억 명이 된다. 지구엔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다. 이 문제를 어찌 해야하나. 인구수를 줄이지 않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기후위기 문제가 해결 불가능하다 여겨지는 또 다른 이유는, 여러 위기와 달리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마치 항구를 향해 서서히 돌진하는 커다란 배의 키를 뒤늦게 돌린 것처럼. 대기로 배출된 온실가스가 다시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인간의 통상적 시간개념을 벗어나 있다. 듣고 보아 깨닫는 때는 이미 늦다. 때문에 과학적 예측이 중요하다. 과학자들이 계산한 파국까지 남은 온실가스 예산은 현재 7년가량이다.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7년 뒤엔 인류의 힘만으론 지구 기후의 변화를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낙관하는 이들은 7년이나 남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80억 인류가 기반한 사회경제체제를 송두리째 바꿔야 할 시간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 이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이들은 여전히 소수다. 한국 사회에서 기후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에 밀리는, 덜 시급한 문제다. 팬데믹을 겪고 있음에도 7년 뒤 여전히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국가 온실가스를 줄여가는 문제를 관장할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가 당장 어찌 만들어지는지가 사람들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평범한 생활인들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년 대선 과정에서 기후위기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된다면 또 다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정치인들 역시 이 연결고리에 관심이 적다.

또 하나, 이런 문제를 다루는 논의 과정이 부딪는 벽이 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바로 중국과 미국, 인도 세 나라가 배출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배출량이 10위권이라지만 절대량으론 이들 3개국에 턱없이 모자란다. 온실가스는 세계적으로 연간 420억 톤가량(2018)이 배출되는데, 한국의 배출량은 7억 톤이 채 되지 않는다. 단시간에 온실가스를 줄이는 건 그만큼 많은 변화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데, 우리 국민을 상대로 이를 설득하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우리가 아무리 줄인들, 중국, 미국, 인도가 더 배출하면 별 소용이 없다.

  

 ​게다가 이런 식의 논의와 합의가 전 세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도 위기 대응의 가능성을 아득하게 한다. 심각성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인류 사회의 대변혁을 이뤄내야만 겨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유사 이래 인류가 그런 일을 아무런 고통 없이 성공적으로 해낸 적이 있었나. 종교개혁, 시민혁명, 공산주의 국가들, 세계대전, 문화혁명, 민주화 운동 등이 떠오르지만, 결국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참혹한 과정을 겪지 않았나. 우린 인류의 오랜 숙제인 지구상 빈곤과 전쟁의 악순환 문제도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라고 묻는 이들이 있다는 것, 또 그런 질문을 하는 이 가운데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눈에 띈다는 것 정도랄까. 청소년기후행동이란 단체는 그동안 온실가스 감축을 제대로 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을 물어달라고 지난해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아이들이 희망이지만, 말고는 달리 없다는 게 서글프다. 코로나19로 시작된 세계적 감염병은 기후변화 때문에 앞으로 더 잦아질지 모른다. 우리가 평생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산 마지막 인류 세대가 될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지금이 인류 절멸사의 시작점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2100년에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큰, 두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바라보며 그렇지 않기를 바라보지만, 하염없이 그렇게만 흘러갈 것 같아 그저 야속하고 서글플 따름이다. 

출처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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