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와 에너지 – 암호화폐, 기후변화와 공존 가능할까?
글, 이병호 칼럼니스트
전 세계는 지금 암호화폐 열풍입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만 해도 암호화폐의 하루 거래량이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한 거래량의 2배 이상으로, 하루 동안의 거래대금이 무려 47조 7천억 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암호화폐 채굴이 에너지 낭비로 이어진다
거래량이 많아지면서 암호화폐의 채굴량도 함께 폭증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요, 암호화폐를 채굴할 때는 컴퓨터의 연산을 이용해 암호를 풀어야 하는데, 그 연산이 매우 복잡해 채굴에 드는 전력 소비량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대안금융센터의 계산에 따르면 연간 단위로 환산된 암호화폐의 전력 사용량은 약 121.9 테라와트시(TWh)로 이는 아르헨티나, 아랍에미리트, 네덜란드 같은 국가의 2016년도 전체 전력 소비량보다 많다고 합니다. 1년치 암호화폐 전력 소비량이면 영국의 모든 커피포트에 27년 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양이죠. 게다가 암호화폐의 가치가 높아지면 채굴을 위해 풀어야 하는 컴퓨터 암호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이에 따라 고성능 컴퓨터 수요도 증가하고 더 많은 양의 전기가 암호화폐에 투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채굴이 전기를 낭비해 정상적인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고 환경오염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암호화폐의 70%가 중국에서 채굴되는 데 이때 사용되는 전력 중 40%가 석탄 기반 에너지라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최근 중국과 이란은 암호화폐 채굴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산업에 투입돼야 할 전력이 실물 가치를 생성하지 않는 암호화폐를 채굴하느라 낭비된다는 이유입니다. 중국과 이란 모두 암호화폐 채굴량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이러한 규제 소식이 알려지자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하락하기도 했습니다.
암호화폐 채굴에 뒤따르는 전력 낭비를 방지하고자, 최근 석탄이 아닌 녹색 에너지를 이용하여 암호화폐가 기후변화 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자는 주장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실 전기를 생산하고 이를 분배하는 산업 전체는 생각보다 그 효율이 낮습니다. 생산 후 바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특히 재생에너지는 생산량을 예측하거나 필요에 따라 조절하기 어려워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양에 비해 넉넉한 용량의 설비를 갖춰야 하므로, 사용되지 않고 남는 에너지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남은 에너지는 오래 보관하거나 생산된 전기를 멀리 보내는 기술이 부족할 경우 아깝게 버려지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이용하기도 하죠.
암호화폐 채굴은 이처럼 ‘버려지는’ 에너지를 활용하는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암호화폐 채굴은 그 자체로 실물 가치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불안정하나마 금융자산을 창출합니다. 따라서 사용되지 않고 버려질 에너지를 이용해 암호화폐를 만들어낸다면 적어도 에너지를 아무 소용 없이 낭비하는 일은 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암호화폐를 사용하고 남아서 버려지는 재생에너지의 가치를 변환해 보관하는, ‘저수지’와 같은 용도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영국 케임브리지대 대안금융센터 자료에 따르면 현재 암호화폐 채굴 시 친환경 발전 비중은 39%에 달합니다. 이 기관이 실시한 채굴에 소요되는 에너지원 출처 응답에 따르면 수력(62%), 석탄(38%), 천연가스(36%), 풍력(17%) 등 순으로 집계돼 친환경 에너지 비중이 높습니다. 암호화폐 채굴에는 전기요금이 가장 큰 비용인데, 특정 지역에서는 친환경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더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친환경 에너지의 발전 단가가 낮아질수록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채굴에 쓰는 기업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