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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지식백과] 원자력편 ⑩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역사 上

[에너지 지식백과] 원자력편 ⑩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역사 上 원자력 연구의 기반을 닦기까지

우리나라 원자력발전 역사 上 원자력 연구의 기반을 닦기까지
 
 
[한줄 정리] 1956년 한미원자력협정 체결→1958년 원자력법 제정, IAEA 가입→1959년 원자력원, 원자력연구소 설립→1962년 트리가 마크 Ⅱ 가동
 
우리나라 원자력활용의 첫 발걸음은 1956년 2월 체결한 ‘원자력의 비군사적 사용에 관한 협력 협정(이하 한미원자력협정)’이었다. 이에 따라 1956년부터 1959년까지 국내 연구인력 150명이 미국 아르곤원자력연구소(ANL)로 파견돼 관련 지식을 쌓았다. 이들은 1세대 원자력 인재로서 향후 국내 원자력발전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 
 
1958년 3월에는 원자력법이 제정되며 국내 원자력관리 및 활용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1959년 1월에는 관련 행정을 담당할 원자력원을, 3월에는 기술연구를 담당할 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설립했다. 
 
사진으로 보는 한국원자력연구원 60년사
[그림1] 1959년 설립된 원자력연구소는 원자력연구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관련 이론적 기반을 쌓았다. 각종 기초과학과 공학 연구에도 두루 기여했다.

출처: 한국원자력연구원-사진으로 보는 한국원자력연구원 60년사
 
한편 1958년 8월 우리나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하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국제적으로 승인받았다. 이로써 원자력발전을 위한 법적 근거, 행정 기구, 국제적 협력, 기술인력 확보가 이뤄진 것이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나라는 1959년부터 미국 제너럴아토믹사의 트리가 마크 Ⅱ(TRIGA-MARK Ⅱ) 모델 부품을 하나씩 들여오기 시작했다. 1959년 7월 14일 기공식을 진행한 트리가 마크 Ⅱ는 1962년 3월 30일 가동식을 시작으로 국내 원자력 활용의 역사를 쓰게 됐다. 이를 통해 많은 연구가 이뤄졌고, 원자로 운전과 운영에 대한 실무훈련이 진행될 수 있었다. 트리가 마크 Ⅱ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 받아 지난 1993년 근·현대 과학기술 연구시설로는 처음으로 문화재에 선정됐다.
 
한국 원자력 역사의 시작을 알린 트리가 마크 Ⅱ의 모습
[그림2] 한국 원자력 역사의 시작을 알린 트리가 마크 Ⅱ의 모습. 1993년 문화재에 정식 등록됐다. 출처: 한국원자력연구원

출처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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