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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원고] 에너지갈등 해결을 위한 공론의 장

[기획원고] 에너지갈등 해결을 위한 공론의 장
쟁점과 대립지점이 분명하고, 이해관계자의 입장도 단순했던 과거에 비해 현대의 에너지 쟁점은 유형화하기도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여기고 화석연료 기업조차 재생에너지 사업을 준비하고 있음에도 구체적으로 화석연료를 언제 얼마만큼 줄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원자력에 대해서도 아직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설계수명 이전에 조기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재생에너지가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설비 생산과 공사 과정에서 공해가 얼마나 발생하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갑니다. 이러한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하 재단)이 찾고 있는 해법은 무엇일까요?

인터뷰이 :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윤기돈 상임이사 / 인터뷰어 : 김택원 칼럼리스트
 
 
 
 


>> 지역, 갈등의 현장에서 이익을 공유하는 곳으로 <<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한 정보공유와 소통을 통해 주민들이 분명하게 알 수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발전사업에 따른 수익을 공유하거나 주민이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합니다.”

Q. 전세계적으로 에너지전환이 한창인 현재는 과거 20년보다 논의 양상이 더 복잡해진 듯합니다.

(윤 상임이사) 에너지와 관련된 이슈 전반을 담당하면서 기후변화, 미세먼지, 전력안정성과 같은 다양한 사안들을 다뤄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안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고 이해관계자도 다양해서 갈등이 일어났을 때 대체로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공간적으로도 더 복잡해졌습니다. 원자력과 같은 중앙집중식 발전원은 관련 이슈나 갈등이 원전 건설 지역 인근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역갈등의 양상도 대립지점이 분명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발전시설이 분산되고, 관련 이슈도 여러 곳에서 저마다 다양한 양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사안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 재단의 역할이라 고민이 많습니다.


Q. 에너지와 관련된 논의 지형이 복잡해진 만큼 에너지 문제의 해결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윤 상임이사) 갈등 해소는 당사자 간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사실이나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중립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서도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과정입니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나 가스발전소가 필요하고,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도 추가해야 합니다. 이런 시설을 얼마나 많이, 어디에 건설할지가 큰 논쟁거리입니다. 어딘가에는 이러한 시설을 건설해야 하니 지역 수용성 문제가 늘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한 지역의 주민들이 어떤 시설을 받아들이려면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외부 사람이 건설하고, 외부 사람이 운영 수익을 얻고, 외부 사람에게 생산물을 제공하는 시설은 남에 의한, 남을 위한, 남의 시설이 나와 이웃들이 사는 터전에 들어와 자리만 차지하는 셈이기 때문이죠. 결국 수용성 문제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것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한 정보공유와 소통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기획원고] 에너지갈등 해결을 위한 공론의 장
에너지전환 정책과 사업에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면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여러 지자체 및 관련단체와 업무협약을 맺어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진은 지역에너지전환네트워크와의 업무협약식




Q. 이해관계는 매우 폭넓은 개념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해관계가 중요할까요?

(윤 상임이사) 현실에서 가장 강력한 이해관계는 바로 경제적 이해관계입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경제적 지원은 오히려 타 지역의 반발 또는 갈등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는 발전사업에 따른 수익을 공유하거나 주민이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합니다.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낮아지면서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도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주주가 수익을 배당 받듯 발전소가 건설되어 불편을 겪는 지역 주민에게도 이익이 분배되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주민이 직접 발전설비 운영에 참여하면 더 좋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역 주민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예컨대 이익의 공유는 단지 전력판매수익의 공유뿐 아니라 저렴하게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실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에 송전 비용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발전소 근처는 송전경로가 짧으니 전기요금이 더 저렴할 법한데도 꼭 그렇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지역 수용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력 시장이나 송전 체계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력시장구조나 송전체계와 같은 문제들이 모두 맞물려 있는 셈이죠.


>> K-ESTEEM으로 사회적 공론을 위한 새로운 틀을 짜다 <<

“‘이 일이 필요하니까 해야 한다,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당위성에 기댄 것보다 훨씬 진일보한 방법론이죠. 민주주의 원칙에도 잘 부합하고요. 현재 시험 중인 K-ESTEEM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모범사례를 제공한다면, 앞으로 이러한 절차가 제도적으로 정착되기를 기대해볼 수도 있습니다.”

Q. 말씀하신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갈등의 당사자들은 조속한 해결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갈등 현장에서는 어떤 해법이 필요할까요?

(윤 상임이사) 갈등을 극복한 국내‧외 사례를 통해 상황별로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극복했는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해상 어업권 문제로 논란이 있던 제주도 해상풍력단지가 주민과의 소통으로 실질적 이익 공유를 통해 해결방안을 찾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제주도 해상풍력단지 이후 재생에너지 설비를 대규모로 설치하는 곳에서는 주민들과 발전 이익을 공유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아직 축적된 갈등 사례가 많지 않아서 다양한 상황에 맞는 아이디어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에너지 갈등 해결에는 일찍부터 에너지전환을 시도해 온 유럽의 경험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연합에서는 에너지전환 시도가 수용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사하는 과정에 과학기술영역과 인문사회 영역을 융합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물이 ESTEEM 방법론입니다. ‘Engage STakeholdErs through a systEmatic toolbox to Manage new energy projects’의 약자로 ‘새로운 에너지 프로젝트 운영을 위해 이해관계자와 논의하는 체계적인 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기술을 도입하기 전에 계획 단계부터 모든 이해관계자를 폭넓게 모아 합의점을 도출하는 방법입니다. 재단은 ESTEEM을 K-ESTEEM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맞게 수정하여 적용하려 합니다.

Q. K-ESTEEM, 공론을 위한 장을 마련하는 셈인 것 같습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윤 상임이사) 실제 갈등현장에서는 핵심 쟁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말싸움이 엉뚱하게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듯, 사회적으로도 진짜 문제를 다루기보다 엉뚱한 부분에서 갈등이 빚어지곤 합니다. 가짜뉴스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기 때문일 수도, 실제 쟁점은 알지만 너무 민감해서 주변의 이야기로 대립하는 상황일 수도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쟁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내고 공유해야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K-ESTEEM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접근이 진행된다면 에너지 관련 시설을 건설하기 전부터 기업, 지자체, 지역 주민까지 모든 이해관계자가 모여 시설이 도입됐을 때의 장‧단점을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하고 갈등 요소를 차근차근 정리합니다. 정리된 갈등 요소에 따라 가능한 해결방안을 찾아 최종 합의점을 도출하고 실제 운영에 반영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활용에 앞서 현재 당진에서 시험적으로 운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당진은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그린뉴딜형 산업단지’를 만들겠다고 발표하며, 에너지전환 관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Q. 지금까지는 정책적으로 결정된 사항에 대해 선택지가 적은 편이었는데, 이렇게 하면 확실히 다양한 합의점이 도출될 수 있겠네요.

(윤 상임이사) ‘이 일이 필요하니까 해야 한다, 어떤 조건이 있어야 할 것인가?’와 같은 당위성에 기댄 것보다 훨씬 진일보한 방법론이죠. 민주주의 원칙에도 잘 부합하고요. 현재 시험 중인 K-ESTEEM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모범사례를 제공한다면 앞으로 이러한 절차가 제도적으로 정착되기를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아직 시범 운영하는 단계지만, 기존의 공론화와 분명하게 다른 점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해관계자를 선정하는 데 가장 많은 공을 들인다는 것입니다. 이해관계자가 어떤 사람인가, 이해관계자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최대한 다양한 입장이 반영돼야 합니다. 이해관계자와 쟁점만 명확히 파악하면 이후에는 입장 차를 좁힐 수 있는 여러가지 방안을 수월하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 신뢰받는 중재자,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가야할 길 <<

“에너지도 교육과 같은 백년대계입니다. … 재단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에너지 정보 기관으로서 누구에게나 필요성을 인정받았으면 합니다. 그러한 신뢰야말로 공정한 중재자로서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Q. ESTEEM 방법론이 이해당사자간 합의의 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책담당자가 여론을 받아들이는 통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윤 상임이사) 지역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담론은 언론이나 설문조사만으로는 온전히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재단은 대국민을 대상으로한 대표 에너지 정보 소통 기관으로서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국민이 다양한 에너지정책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확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지역에서의 간담회나 국민인식조사 그리고 토론회처럼 의견을 다양하게 논의하는 틀을 마련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모인 다양한 의견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리해 이해관계자와 공유하고, 소통하고 있습니다. 재단은 포용적 쌍방향 소통 기관으로서 소모적 갈등 해소를 위한 중재자이자 나아가 국가 성장을 위한 사람들간의 협력을 돕는 소통의 통로 역할을 할 것입니다.


Q. 에너지와 관련된 갈등을 해결하려면 이해관계자와 시민들의 정보 수준도 높아져야 할텐데요, 그런 점에서 교육 분야와도 협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윤 상임이사) 교육 쪽으로도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교과서를 분석해서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교과 개편 때는 에너지 이슈를 안보, 복지, 환경 문제와 연결해서 다룰 것을 권고하려 합니다. 이외에도 여러 교재나 도구를 만들어서 방과후 교육처럼 교과 외 시간에 에너지를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틀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획원고] 에너지갈등 해결을 위한 공론의 장
 
 
 
 

Q. 마지막으로 재단을 운영하면서 앞으로의 지향점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윤 상임이사) 에너지도 교육과 마찬가지로 백년대계입니다. 그래서 기술이나 제도가 들어오면 쉽게 바뀌지 않고, 문제가 생겼을 때 방향을 수정하기도 어렵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토의하고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미리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과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에너지전환의 모범사례로 평가받는 독일도 1970~1980년대, 수많은 논쟁을 거치고 나서야 에너지전환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재단도 이를 위한 논의의 장을 만들었다면 개인적으로 제 임기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재단이 공평하고 공정한 기관으로 인식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정부가 바뀌고 시대가 변하더라도 재단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에너지 정보 기관으로서 누구나 필요성을 인정받았으면 합니다. 그러한 신뢰야말로 공정한 중재자로서 다양한 갈등을 해결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한 신뢰감을 쌓는 것은 재단의 몫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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