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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품 속 에너지] ⑧ 공간에 퍼져있는 영점 에너지?

공간에 퍼져있는 영점 에너지?

 - SF 작품 속 에너지 ⑧ - 

 

고호관 작가

 

 

고호관 작가는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사를 전공하고 『과학동아』, 『어린이과학동아』, 『수학동아』에서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기자의 삶을 마무리하고 SF 작가이자 과학 저술가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무섭지 않아』로 제2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았으며, SF 앤솔러지 『아직은 끝이 아니야』(공저)와 『우주로 가는 문, 달』, 『술술 읽는 물리 소설책 1~2』, 『하늘은 무섭지 않아』, 『우주선 안에서는 방귀 조심!』 등을 집필했습니다. 이와 함께 『수학 없는 수학』, 『진짜진짜 재밌는 곤충 그림책』,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60-1999』, 『링월드』, 『신의 망치』, 『SF 명예의 전당 1: 전설의 밤』(공역), 『머더봇 다이어리』 등을 번역했습니다.​

 

 

양자역학은 아주 미시적인 세상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다루는 물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양자역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물질에도 파동성이 있다거나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는 건 불가능하다 등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양자역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게 정말로 말이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아리송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단히 정교한 과학이지요.

 

일상생활에서도 양자역학을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아마 건강과 관련된 분야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을 겁니다. 양자역학을 이용해 건강을 측정한다거나 병을 치료한다거나 하는 사이비 의료기기가 상당히 많거든요.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양자니 퀀텀이니 하는 단어를 들먹이지만, 원리는 당연히 엉터리입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게임 ‘스타 시티즌’에 등장하는 퀀텀 드라이브. 아광속 비행에 사용하는 우주선의 엔진입니다. 스타 시티즌은 ‘이것까지 된다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현실적인

디테일과 깊이있는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창작물인 만큼 작품 속 기술들은 당연히 엄밀한 과학보다는 게임적 허용에 가깝습니다만, 아예 근거가 없지는 않습니다. © Cloud Imperium Games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사실 좀 찔리기도 합니다. 양자역학을 엉터리로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SF작가도 많으니까요. 사실 퀀텀 엔진이나 퀀텀 드라이브라는 식의 개념을 많이 갖다 씁니다. 솔직히 과학자가 보기에는 대부분이 이야기를 위해 만든 허황된 이론이겠지만, 나름대로 근거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에 번역은 되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SF 소설 중에 아서 클라크의 「머나먼 지구의 노래」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먼 미래에 항해 중인 우주선이 인간이 정착한 행성에 잠시 들르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 장편소설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우주선 ‘마젤란 호’는 ‘퀀텀 드라이브’라는 것을 이용합니다. 아무렇게나 대충 붙인 이름일 수도 있지만, 작가가 명색이 하드SF의 대가인 아서 클라크 아닙니까?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클라크는 서문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내용이 한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당시에 알려진 어떤 과학 원리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그 한 가지 예외가 바로 퀀텀 드라이브입니다. 그러면서 퀀텀 드라이브가 유일하게 과격한 상상인 건 맞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퀀텀 드라이브는 영점 에너지를 이용하는 장치입니다. 영점 에너지는 진공 에너지라고도 합니다. 양자역학은 완벽한 진공 상태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물질이 없는 진공이어도 찰나의 순간에 무수한 소립자가 끊임없이 나타났다 소멸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양자 요동’이라고 합니다. 클라크는 작중에서 퀀텀 드라이브가 공간 자체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이 양자 요동을 이용해 작동한다고 설명합니다.

 


양자 요동을 3차원 이미지로 형상화한 그림. 양자 요동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기반zero 으로 70년도 더 전에 예측됐습니다. 진공에서 에너지가 갑자기 발생하므로 열역학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양자 요동의 에너지는 다른 존재와 상호작용하기도 전에 바로 소멸해버리므로 소열역학 법칙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 Ahmed Neutron/Wikimedia Commons

 

 


브라이언 그린의 저서 「엘레건트 유니버스」에 소개된 양자요동.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진공이라도 아주 미세한 영역에서는

수많은 입자들이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때로는 공간이 뒤틀리기도 하지요.

© Brian Greene / The Elegant Universe

 

 

진공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는 1960년대 말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이 개념을 처음 소설에 사용했던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 겸 SF작가 찰스 셰필드였습니다. 이 아이디어에 끌린 건 작가들만은 아닌가 봅니다. 미국 공군과 해군이 비밀리에 진공 에너지를 이용한 로켓 엔진을 개발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기술은 개발만 된다면 엄청나게 혁신적입니다. 공간 자체의 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연료가 필요 없습니다. 무거운 연료를 싣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연료가 떨어질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커다란 장점입니다. 연료가 필요 없으니 엔진이 고장 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의 무한 에너지원입니다. 우주선을 타고 다른 별로 가게 해줄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될지도 모릅니다.

 


움직이는 거울로 양자 요동으로부터 역학적 에너지를 유도하기 위해 제안된 장치.

거울을 마주보게 두고 한 쪽을 진동시켜서 양자 요동이 역학적 에너지로 나타나도록

증폭한다는 개념입니다. 물론 거울이 초당 수십억 번 넘게 진동해야 하기에

사고 실험에 그칠 뿐입니다만, 나중에 어떤 방법이 나올지는 모를 일이지요. ©  2018 V. Macrì et al. 

 

 

이 아이디어를 활용한 SF 작품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SF드라마 시리즈 ‘스타게이트’에는 영점 모듈(Zero Point Module, ZPM)이 등장하는데, 바로 영점 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영점 모듈은 도시 전체 혹은 항성간 우주선에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최초로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비행사 버즈 올드린은 존 반스라는 SF작가와 「타이버와의 조우」라는 소설을 썼는데, 불가능하지는 않으면서 성능이 뛰어나고 대량의 연료를 싣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우주선 엔진을 찾다가 영점 에너지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스타게이트’ 시리즈에 등장하는 영점 모듈. 고대 아틀란티스에서 사용한 동력원으로 소개됩니다. 
작중에서는 강력한 에너지를 저장한 배터리처럼 묘사됩니다. © MGM Television Entertainment

 

 

이 영점 에너지를 언젠가 우리가 활용할 수 있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퀀텀’이라는 단어를 붙여 그럴듯하게 만든 다른 상상의 산물처럼 허구에서 그칠지도 모르겠지요. 그래도 연료가 필요 없는 우주선을 만들 수 있다니 작가로서는 포기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① 핵융합

▶ ② SF가 보여주는 에너지의 미래, 실현 가능할까?

▶ ③무궁무진한 ‘물’에서 얻는 에너지는? 수소핵융합, 수력발전, 조력발전 등

▶ ‘매트릭스’의 생체 전기, 남는 장사일까?

▶ ⑤도망가는 태양을 붙잡아라! 태양을 감싸 에너지 생산하는 '다이슨 구'

▶ ⑥NASA가 상상하는 반물질 우주선? 쌍소멸이 만드는 엄청난 에너지

▶ ⑦ 블랙홀에서 에너지 뺏어오기?!

 

출처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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