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유가의 상승으로 국내 기름값도 덩달아 고공행진 중입니다. 지난주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2,000원 선을 돌파했는데요,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은 것은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2012년 10월 이후 9년 만입니다.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일차적으로는 운송과 여객 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자 물가 상승과 국제수지 악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배경 및 국내 경제 파급 영향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 원유 가격이 10% 오르면 국내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0.2% 정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은 급상승 중인데요. 특히 경유의 경우 유럽 내 재고 부족이 현실화 되면서 휘발윳값 상승분보다 가파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나토(NATO) 가입에 반대하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국제 유가가 들썩이게 된 계기는 바로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 가입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히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나토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구소련 등 공산주의 진영과 대립하던 미국, 캐나다가 유럽 10개국 등과 함께 만든 집단방위기구인데요, 1999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구권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나토의 동진은 시작되었습니다. 5년 뒤인 2004년에는 과거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했던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까지 나토에 가입하면서 나토와 러시아 간의 대립은 극심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200km가 넘는 국경선을 맞대고 있어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나토와 러시아가 곧바로 맞닿게 됩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할 경우 유럽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미사일로 공습하며 전면전을 시작했습니다. 전쟁 개시 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북부와 동부 돈바스, 남부 흑해 연안의 일부를 점령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막혀 전선에서 고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휴전 없는 공방을 계속하고 있으며, 전쟁은 장기화에 접어든 상황입니다.
지상전에서 고전하는 러시아군은 원거리 미사일 타격에 집중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군은 게릴라 전술로 러시아 병력을 기습 공격하는 방식으로 반격하고 있습니다. Ⓒ로이터
전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 2위 러시아, 세게 에너지 시장을 흔들다
전쟁이 시작되면서 세계 경제 시장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 성장률이 당초 예상되던 4.5%에서 1% 정도 하락한 3.5% 정도에 머물고, 물가는 2%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주요 20개국(G20)의 성장률을 3.6%로 하향 조정했는데요, 장기화된 코로나 19로 긴축 정책을 펼치던 상황까지 고려하면 세계 경제 침체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전 세계 천연가스(LNG) 생산량이 2위인 나라입니다. 특히, 유럽의 경우 LNG 공급의 1/3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러시아에 대한 강도 높은 경제제재와 전쟁으로 천연가스의 공급이 전면 중단될 경우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입니다. 현재 전 세계 LNG 생산시설의 가동률은 거의 90%에 가까울 만큼 높은 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유, LNG 시장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11%와 25%로 유럽에 비해서는 높지 않은 편이지만, 러시아에 의존하던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 카타르 등 다른 LNG생산국을 통해 물량 확보에 나설 경우 에너지 부문의 부담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러시아는 전체 수출에서 원유와 천연가스가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특히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의 국가들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유엔국제무역통계
에너지 공급 불안에 에너지믹스 재조정하는 세계 각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기점으로 정유 업체의 주가는 일제히 급등했습니다.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에너지 관련 주가 강세를 보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원전 등 청정에너지 및 탄소중립 기술 관련 투자가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독일 정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을 기존 계획보다 더 앞당겨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독일은 에너지 시스템을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스 의존도를 크게 높여왔습니다.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저렴하게 천연가스를 도입할 수 있었기에 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높이면서도 전력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천연가스 공급 불안 사태를 겪으면서 에너지믹스에서 가스 비중을 줄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가속화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원전의 역할에 재주목하는 움직임도 포착되는데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최근 환경뿐 아니라 ‘안보’를 고려한 새로운 에너지 믹스를 찾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은 남은 원전의 수명 연장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베크 장관이 독일의 급진적인 기후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녹색당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큰 변화입니다.
한편 프랑스는 에너지 자립을 위해 원자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2050년까지 최대 14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년 넘게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영국도 소형원자로(SMR)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 국가들이 천연가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에너지믹스를 재조정하는 모습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더라도 당분간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공급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입 에너지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중·장기적인 에너지 대책이 필요해 보이는데요, 세계 각국의 새로운 돌파전략은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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